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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유산

법원에서 바라보는 디지털 자산의 증거 능력

1. 디지털 증거와 법적 증거 능력의 기본 원칙
디지털 자산이 법원에서 증거로 제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논의되는 것은 증거 능력(Evidentiary Admissibility)의 인정 여부이다. 한국의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에 따르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민사소송법 역시 진정 성립과 증명력을 엄격히 구분한다.

 

따라서 블록체인 거래 내용, 암호화폐 지갑 기록, 이메일·메신저 로그 등 디지털 자산 관련 기록이 증거로 사용되려면 단순한 출력물이나 캡처 화면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원은 해당 자료가 위·변조 가능성이 배제될 수 있는지, 수집 절차가 적법했는지, 증거 보전 절차를 거쳤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거래 내용은 블록체인에 영구 기록되므로 비교적 진정성이 높게 평가되지만, 사설 서버의 로그 파일은 관리 주체에 따라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증거 능력이 제한될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자산의 법적 증거 능력은 단순한 데이터 보유 여부가 아니라 법적 절차와 기술적 신뢰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법원에서 바라보는 디지털 자산의 증거 능력

 

 


2. 진정 성립과 위·변조 가능성 검증
법원이 디지털 자산의 증거 능력을 판단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부분은 진정 성립(Authentication) 여부이다.

 

종이 문서의 경우 필체 감정이나 인감 확인 등으로 진정 성립을 인정할 수 있지만, 디지털 증거는 클릭 한 번으로 위조가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법원은 전자서명법,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등 관련 규정을 토대로 전자적 기록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예컨대, 공인전자서명이 포함된 거래 기록은 위·변조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되지만, 단순 스크린 캡처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메신저 대화나 이메일의 경우, 송수신 기록이 서버 사업자로부터 공식 확인되지 않는 한, “누가 작성했는지” 여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배척될 수 있다.

 

최근에는 해시값(Hash Value)과 같은 기술적 검증 방식을 통해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법원 역시 이러한 기술적 검증 자료를 보조적 판단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진정 성립을 확보하지 못하면 디지털 자산은 아무리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법정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이터에 불과하다.

 


3. 국제 판례 속 디지털 자산 증거 인정의 차이
국내만 아니라 해외 법원도 디지털 자산의 증거 능력 문제를 다수 다루고 있으며, 국가별로 인정 기준에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 연방법 증거 규칙(Federal Rules of Evidence)은 전자적 데이터의 경우 신뢰성 있는 출처, 위·변조 여부, 수집 절차의 적법성을 충족하면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미국 법원은 블록체인 기반 기록을 “본질적으로 위조가 어렵다”는 이유로 강한 증거력을 부여한 바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에서는 GDPR 규정과 개인정보 보호 원칙이 증거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정보 처리 동의 없이 수집된 디지털 자산은 증거 능력이 제한되거나 불법 증거로 취급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경우에는 이미 블록체인에 기록된 데이터가 법적으로 공증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선언한 판례도 존재한다.

 

이처럼 국제 사회는 디지털 자산의 증거 인정 범위에 있어 **프라이버시 보호 중심(EU), 기술적 신뢰성 중심(중국), 절차적 적법성 중심(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법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다국적 분쟁에서 디지털 자산을 증거로 활용하려면, 각국의 증거법 체계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4. 향후 과제와 디지털 증거 활용 전략
법원이 바라보는 디지털 자산의 증거 능력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법적 제도, 국제 규범, 개인정보 보호까지 포괄하는 종합적 과제이다. 

앞으로는 블록체인, 전자서명, 디지털 포렌식 기술이 더욱 발전함에 따라, 법원이 디지털 자산을 증거로 인정하는 범위도 점차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첫째, 국가 간 증거 인정 기준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조화(International Harmonization)가 필요하다. 

 

둘째,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증거 확보 필요성 간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법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기업과 개인 모두 분쟁에 대비해 디지털 자산을 사전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필요시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기록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계약이나 금융 거래 내용은 반드시 전자서명이나 블록체인 기반 보관 시스템을 통해 관리해야 법정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디지털 시대의 분쟁은 결국 데이터 싸움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으며, 증거 능력을 확보한 자산만이 법정에서 살아남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